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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의 동심원은 왜 타원이 될까?

시작점과 도착점에 시간축을 세웠더니 나온 ‘기울어진 팽이’

목차 (Contents)9 sections

2018년의 타원

2018년에 시작점, 도착점, 이동거리로 경로를 계산하는 글(「시작점, 도착점, 이동거리를 이용한 경로계산」)을 쓴 적이 있다. 문제는 단순했다. 지도 위에 출발점 A와 도착점 B가 있고, 오늘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정해져 있다. 그러면 A에서 출발해 B에 도착하는 동안 중간에 어디까지 들를 수 있을까.

어떤 곳에 들르려면 “A에서 그곳까지 가는 거리”와 “그곳에서 B까지 가는 거리”를 더한 값이 내가 걸을 수 있는 거리보다 짧거나 같아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곳들의 경계를 그리면 타원이 나온다. A와 B가 타원의 두 초점이 된다.

압정 두 개를 꽂고 실을 느슨하게 걸어 연필로 팽팽하게 당기며 그리면 타원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압정이 출발점과 도착점이고, 실의 길이가 이동 가능한 거리다.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걷는 속도) × (주어진 시간)이다. 그래서 실의 길이는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의 차이(주어진 시간)와 걷는 속도로 정해진다. 당시에는 결과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재미있어서 정리만 해 두고 넘어갔다.

지도에 시간을 세우면

최근에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질문을 하나 더했다. 평평한 지도 위에 위쪽 방향으로 시간축을 세우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시간이 흐르는 3차원 공간을 생각하면 된다. 이 공간에 “언제,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를 그려 보면 이렇게 된다.

  • 출발하는 순간: 아직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갈 수 있는 곳은 출발점 하나다. 맨 아래의 뾰족한 점이다.
  • 시간이 조금 흐르면: 걸어갈 수 있는 반경이 점점 넓어진다. 위로 갈수록 벌어지는 원뿔이 된다.
  • 도착 시각이 다가오면: 정해진 시각에는 도착점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너무 멀리 가 있으면 안 된다.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있을 수 있는 범위가 다시 좁아진다.
  • 도착하는 순간: 다시 도착점 하나로 모인다. 맨 위의 뾰족한 점이다.

이 두 원뿔을 맞붙이면 위아래가 뾰족하고 가운데가 불룩한 다이아몬드 팽이 모양이 된다. 두 원뿔은 각각 시간축을 따라 똑바로 서 있지만, 꼭짓점이 서로 다른 곳에 있어서 둘을 맞붙인 팽이는 도착점 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모양이 된다.

이 팽이에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빛을 비추면 바닥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가 2018년에 구했던 바로 그 타원이다. 평면에서 계산한 타원은 이 입체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었다.

기울어진 팽이와 바닥에 떨어진 타원 그림자
그림 1: 꼭짓점이 어긋난 두 원뿔이 만든 시공간 프리즘과 바닥의 타원 그림자

이 팽이에는 이미 이름이 있다: 시간지리학

찾아보니 이 모양은 이미 한 학문 분야의 핵심 도구였다. 스웨덴의 지리학자 토르스텐 헤거스트란트(Torsten Hägerstrand)가 1970년 논문으로 널리 알린 시간지리학(time geography)이다.

시간지리학은 사람의 움직임을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지도 + 시간” 공간 안의 선으로 본다. 개념은 세 가지만 알면 된다.

  • 시공간 경로: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움직인 자취를 시간축 위에 그린 선이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선이 똑바로 위로 올라가고, 이동하면 옆으로 기운다. 빨리 움직일수록 더 많이 눕는다.
  • 시공간 프리즘: 출발점과 도착점, 시각, 이동 속도가 정해졌을 때 그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영역 전체다. 앞에서 그린 기울어진 팽이가 바로 이것이다.
  • 잠재 경로 영역(통행가능면): 프리즘의 그림자, 즉 주어진 시간 안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지도 위의 범위다. 2018년의 타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헤거스트란트는 사람의 하루를 묶어 두는 제약도 세 가지로 나눴다.

  • 능력 제약: 걷는 속도, 차가 있는지,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처럼 몸과 수단의 한계다. 팽이가 얼마나 넓게 벌어질 수 있는지를 정한다.
  • 결합 제약: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곳에 있어야 하는 약속이다. 9시 출근, 회의, 아이 하원 같은 것이다. 팽이의 꼭짓점을 못 박는다.
  • 권한 제약: 영업시간이나 출입 통제처럼 제도가 정한 규칙이다. 팽이 안에 있어도 실제로는 쓸 수 없는 부분을 잘라낸다.

2018년에 혼자 손으로 구했던 타원은 이 분야에서 이미 이름을 가지고 쓰이던 도구였던 셈이다.

팽이 모양을 정하는 것: 여유 시간과 거리

팽이를 몇 번 그려 보면 모양을 정하는 요소가 두 가지라는 걸 알 수 있다.

팽이의 폭(뚱뚱함)은 여유 시간이 정한다. 이동에 필요한 시간보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할수록 팽이가 뚱뚱해진다. 중간에 들를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팽이의 기울기(두 꼭짓점을 잇는 선이 시간축에서 기운 정도)는 필요한 평균 속도가 정한다. 필요한 평균 속도가 최고 속도에 가까울수록 팽이가 눕는다. 가장 많이 누워도 원뿔 옆면의 기울기, 즉 최고 속도까지만 눕는다.

극단적인 경우를 보면 감이 잡힌다.

  •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으면: 팽이가 똑바로 선다. 그림자는 출발점을 중심으로 한 원이다.
  • 시간이 딱 맞으면: 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주어진 시간이 정확히 같으면 여유가 하나도 없다. 팽이가 납작하게 눌려서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직선 하나가 된다. 곧장 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 시간이 모자라면: 팽이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제시간에 도착할 방법이 없다.

참고로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를 때 팽이의 수평 단면, 즉 “어느 한 시각에 있을 수 있는 범위”는 출발 후 기울어진 허리의 아랫단에 닿기 전까지는 원이고, 허리를 가로지르는 중간 시간대에는 두 원이 겹친 렌즈 모양이 되었다가, 허리 윗단을 지나 도착할 때까지 다시 원이 된다. 두 원뿔이 만나는 허리 테두리는 도착점 쪽이 더 높게 기울어진 평면 위의 타원이다. 이 테두리를 바로 아래 바닥에 수직으로 비춘 것이 바닥의 타원 그림자다.

여유와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팽이 모양
그림 2: 이동 여유와 거리에 따른 팽이 모양의 변화 (출발점 = 도착점인 원 → 기운 팽이 → 거의 선이 된 팽이)

두 꼭짓점의 정체: 집과 회사

여기까지 그려 놓고 보니 두 꼭짓점에 붙일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예를 들어 출근길 한 구간을 떼어 놓으면 다음과 같다.

  • 아래 꼭짓점: 아침 8시의 집
  • 위 꼭짓점: 아침 9시의 회사

퇴근길이라면 아래 꼭짓점이 저녁 6시의 회사, 위 꼭짓점이 저녁 7시 반의 집이 된다. 수학 장난감으로 만든 기울어진 팽이는, 집과 회사 사이를 정해진 시각에 맞춰 오가는 사람이 그 이동 구간 동안 발을 디딜 수 있는 시공간 전체였다. 팽이 밖에 있는 장소는 지도상으로 아무리 가까워 보여도 그 일정 안에서는 들를 수 없는 곳이다.

서울역사박물관: 1966년의 동심원

이런 생각을 하던 즈음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도시기본계획 수립 60주년 특별전 「서울 도시계획 대관람」을 봤다.

1966년 자료 중에 「근린주구공공시설기준」과 「공원계획모식도」가 있다. 앞의 자료는 집을 중심에 두고 가구 규모(20호~4,000호)가 커질수록 유치원, 국민학교, 소매시장, 도서관을 동심원 단계로 넓혀 가는 기준표이고, 뒤의 자료는 서비스 반경(250m~2,000m)에 따라 유아공원, 아동공원, 근린공원, 대공원을 동심원으로 배치한 모식도다.

시간지리학으로 보면 이 모델은 출발점과 도착점이 모두 집인 사람을 전제한다. 집에서 나와 동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으면 팽이는 똑바로 서고, 그림자는 집을 중심으로 한 원이 된다.

즉 1966년의 동심원은 두 초점이 한 점에 겹친 타원이다. 유아공원은 여유 시간이 적은 작은 원이고, 대공원은 여유 시간이 많은 큰 원이다. 동심원 하나하나는 여유 시간이 다른, 똑바로 선 팽이들의 그림자인 셈이다. 동네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이 배치가 정확히 맞는다.

1966년의 동심원(초점 1개)과 2026년의 타원(초점 2개)
그림 3: 1966년 근린주구 모델(좌, 초점 1개)과 2026년 출퇴근 타원(우, 초점 2개)
1966년 근린주구공공시설기준
전시 자료: 1966년 「근린주구공공시설기준」 (가구 규모 20~4,000호에 따른 집 중심의 동심원 위계)
1966년 공원계획모식도 및 무허가건물 정리 장기계획
전시 자료: 1966년 「공원계획모식도」 (반경 250m~2,000m의 유아·아동·근린·대공원 체계)

2026년 시민의 하루

같은 전시의 마지막에는 「도시 한 조각에 담긴 시민의 하루: 낮의 도시 / 밤의 도시」라는 드로잉이 있다. 패널에 기록된 시민의 하루 동선은 이렇다.

시각위치 및 활동
07:30집 근처 산책 (아이와 함께 걷는 아침)
08:00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출근
12:30도심 공개공지에서 점심 후 휴식
18:10퇴근 후 하천을 따라 산책
18:30상업가로
20:00동네 골목, 귀가

이 시민은 동심원 안에 머물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의 두 점 사이를 대각선으로 오간다. 초점이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순간, 1966년의 원은 옆으로 잡아당겨져 타원이 되고, 똑바로 서 있던 팽이는 회사 쪽으로 기운다.

도시 한 조각에 담긴 시민의 하루: 낮의 도시
전시 드로잉: 「도시 한 조각에 담긴 시민의 하루: 낮의 도시」 (07:30~18:10 시간대별 동선)
도시 한 조각에 담긴 시민의 하루: 밤의 도시
전시 드로잉: 「도시 한 조각에 담긴 시민의 하루: 밤의 도시」 (18:30~20:00 귀갓길과 23:00 밤의 녹지축)

실제 하루는 팽이 여러 개를 이은 사슬이다

하루 전체를 놓고 보면 팽이 하나가 아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회사에 머물러야 하니 그 시간대의 경로는 회사 위에 똑바로 선 수직 기둥에 가깝다. 헤거스트란트가 말한 결합 제약이다. 이 기둥의 앞뒤와 점심시간에 크고 작은 이동들이 붙으면서, 실제 하루는 팽이 여러 개와 기둥을 이은 사슬이 된다.

  • 07:30 산책: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팽이다. 똑바로 서 있다. 1966년의 동심원 모델이 가장 잘 들어맞는 구간이다. (20:00 귀가 후 동네 골목에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 08:00 출근: 집에서 회사로 가는 팽이다. 여유가 거의 없어 지하철 노선을 따라 거의 선으로 눌린다.
  • 12:30 점심: 회사에서 나와 회사로 돌아오는 작은 팽이다. 똑바로 서 있지만 중심은 집이 아니라 회사다. 도심 공개공지는 이 팽이 안에 있다.
  • 18:10 이후 퇴근길: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팽이다. 출근 때보다 시간 여유가 있어 조금 더 뚱뚱하고, 그 안에 18:10의 하천 산책로와 18:30의 상업가로가 들어간다.

지하철까지 고려하면 모양은 더 달라진다. 지하철은 역과 역 사이를 빠르게 건너뛰게 해 주기 때문에, 팽이의 그림자는 매끈한 타원이 아니라 역 주변으로만 부풀고 노선을 따라 길게 늘어난 모양이 된다.

SpaceTimeGeoVisualization 시공간 큐브와 시간산포기둥
시간지리학 연구의 시공간 큐브 시각화 도구: 도시 지도 위의 시간 평면(8:00, 14:00, 20:00)과 시공간 경로(좌), 평행평면그림(우상), 시간산포기둥(우하) (출처: 박기호·안재성·이양원, 2005, 『대한지리학회지』 40권 3호)

정리

집 앞 500m에 있는 공원이나 도서관을 평일 낮에 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서 바로 나온다. 그 시간대의 팽이는 이미 회사 위에 서 있다. 공원은 집에서 가깝지만 낮 12시 30분의 팽이 안에는 들어 있지 않다.

1966년의 계획은 초점이 하나인 원을 기준으로 시설을 배치했다. 2026년의 시민은 초점이 둘인 타원 위에서 산다. 2018년에 지도 위에서 구했던 타원은, 시간축을 세우고 보니 하루라는 기울어진 팽이의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