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지음 // 이배진
이 책은 20살에 가장,보호자,돌봄의 주체로의 변화된 어떤 사람의 에세이다.
가정에서 노령이나 질병으로 인해 가족을 돌보는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저자의 나이는 인지증 다른말로 치매인 부모를 돌보기엔 적은 나이였다.
책의 부제는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인데 책이 출판된 2020년에는 아마 29살의 청년이 되어있을것이다.
보통 신문에서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기초수급자 조금 더 보태자면 차상위계층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95_ 공장에서 시민단체로 직장을 옮기고 월급이 줄어드니까 차상위 계층 자격조건이 됐다. 죽기 살기로 버틸 때는 안 된다더니, 보증금이 반토막나고, 모아둔 돈은 병원비로 다 쓰고, 급여도 줄어드니까 드디어 해 준다고 했다. 허망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살면서 빈곤의 경계선에 걸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에게는 야박한 말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이라는 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열심히 살면 빈곤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본인만의 문제 이외에도 주변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준점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진흙탕에 가라않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 바닥이 되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
모든 것이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라면 받아들이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엄청 억울할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냉혹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나마 정책적인 지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167_’간병할 자유’라는 말을 여러 번 곱씹게 됐다. 간병은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간병을 하려고 할 때 간병하는 사람에게 지원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간병보다는 자기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강제로 떠맡은 간병에 경제적 보상을 안겨준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합리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자유는 간병이나 돌봄을 둘러싸고 다시 형성돼야 한다. 그렇때 혼자 고립되는 간병이나 가족 돌봄 분업을 두고 벌이는 다툼을 줄일 수 있다.
경제적인 보상을 준다고 간병의 힘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놀이로 페인트를 칠할때는 즐겁게 했던 아이가 돈을 받고 페인트 바르자 의욕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처럼 간병하는 사람의 의지도 꺽어버릴수있다.
최근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생겨나고 의료보험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어 그러한 정책들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가 늘어나면 간병을 하는 것이 강제적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하는것이 될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더 납득할수 있을것이다.
197_아버지가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병원에 들어가 생계 급여로 살아가는 미봉책도 불가능했다. 기초 생활 보장제도의 부양 의무자 기준은 형벌이면서 낙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때문에 수급 신청자는 물론 경제적 부양을 하게 되는 부양의무자도 가난해질 수 있다.
저소득층 지원이 자활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근로를 해서 소득이 늘어나면 오히려 지원금액이 깍여나간다든가 있던 혜택이 없어진다든가 해서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머무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차상위계층에서 3분위로 넘어갈때가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결국 목돈을 모아 한번에 그 윗 분위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고소득직업을 얻어야 하는데 현실상 어려움이 있는것 같다. 희망통장등 제도야 있지만서도…
이 책은 저자가 평소에 읽기 편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 느낌이 난다. 내용은 무겁지만 문장은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만약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장이 되어 비슷한 상황이라면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대학병원은 돈 빨아먹는 기계 같은 느낌이라는 것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