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과감히 덜어내는 힘
마이클 바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예문아카이브
E-book으로 읽게된 책이다. 요새 이북은 줄도 칠수 있고 메모도 할 수 있어서 기록하며 읽기에 쉬워진듯 하다. 업체마다 따로 노는 것만 제외하면 한동안은 애용할 예정이다.
책에서 사람이름이 엄청 많이(한 페이지에 한두명은 꼭 나오는것 같다.) 나와 번역하는데 고생했을 것 같다. 읽는 방법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Harald Szeemann이라는 큐레이터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것 같다. 헤럴드 제먼으로 써야할지 하랄트 제만이라고 써야할지 책에서 나온대로 헤럴드스즈먼이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정리 해 주겠지.
또 스마일링 곡선을 검색해 봤더니 안나오길래 스마일커브로 검색 등등 번역하기에 힘들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긴 호황이 낳은 부작용은 사회 곳곳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큐레이션이 필요한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긴 호황은 21세기를 이루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배경이다. 긴 호황은 부족함이 지배하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영역, 이를 테면 데이터의 양이나 인구수, 새로운 음악이나 플라스틱 장난감의 개수 등이 이제 풍요로 넘쳐나게 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컨대 긴 호황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것을 너무 ‘적게’가 아니라 너무 ‘많이’ 가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우선적으로 긴 호황을 통해 사람들의 선택할수 있는 범위가 크게 늘어났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러한 선택을 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에서 큐레이션의 중요성으로 넘어갔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큐레이션이라고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소장품들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러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큐레이션이 사용된다고 한다. 앞쪽을 명시적 큐레이팅 뒤쪽을 암시적 큐레이팅이라고 덧붙이면서.
한마디로 큐레이션을 정의하자면 과잉된 것에서 축소,정제,단순화,범주화 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2가지 종류의 창조성을 구분해보자.
첫 번째는 창조적 해결 과정에서 나타나는 창조성이다. 이러한 창조성은 아주 기발하고 참신하며 늘 명확한 방식을 지니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꼭 필요한 창조성의 종류다.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일 수도 있는 이 창조성을 폐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뭔가를 더 만들 때 필요한 창조성이다. 이것은 이른바 증가시키는 창조성으로 결과물의 양을 점점 늘려간다. 아크라이트, 베토벤, 잡스와 같은 인물이 보인 창조성은 적용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전자의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이 2가지 창조성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데에 있다. 물론 창조성은 그 자체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경우, 이 같은 창조적 행위가 반드시 환영 받는 것만은 아니다.
첫번째 창조성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방식이라면 두번째 창조성은 양을 늘리는 창조성이라고 한다. 창조성은 귀하게 여겨져야 할 가치이지만, 계속 늘어난다면 오히려 많은 정보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 버린다.
저자는 때로는 큐레이션을 통해 무엇이 의미있는지를 찾아내는 것 만으로도 혁신이 될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존의 기능들을 잘 연결해놓은 아이폰이다.
창조성은 마치 솟아오르는 불길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새롭고 보다 나은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모든것을 처음부터 만들어 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지적한다.
뒤샹은 예술 작품에 보다 복잡한 형태의 맥락화 과정이 필요할 경우, 일종의 개념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이때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그런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점차 큐레이터의 역할이 커진다. 영국의 유명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의 말을 빌리면, 미술계에 갑자기 ‘확인’ 과정이 요구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무엇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애당초 무엇이 예술 작품이라고 정의하는 이들의 역할이 매우 커졌고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큐레이터의 중요성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를때는 길잡이가 되어줄수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 남들보다 먼저 가서 이정표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놓을수 있다면 그에 영향을 받을 뒤따라 오는 사람들은 조금 더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2가지 선택 사항을 비교하는 것도 훨씬 수월하다. 큐레이터는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한지 거의 자동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별 노력 없이도 적당한 수준에서 선택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알아채지 못해 각각의 선택 사양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전문 지식은 결코 고정돼 있지 않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 혁신 시대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과 그것이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렇다고 학습하고 연구하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부터 살펴보겠지만 큐레이션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지식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졌던 큐레이션이 점차 정교한 알고리즘 및 데이터마이닝(대용량의 데이터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발견하는 과정-옮긴이) 기법을 바탕으로 한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딥러닝과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천서비스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유튜브를 보면 체감이 온다. 아직까지는 기계적인 분석이 목록을 보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낼수 없어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추측의 정확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할 일이 있는듯하다.
큐레이션과 관련된 대표적인 문제로는 지적 재산 및 이득의 배분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큐레이터는 일정 부분 자신의 큐레이션 업무가 주요 업무에 이른바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재구성함으로써 돈을 벌거나 관객을 모으기 때문이다. 결국 큐레이션의 모든 형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나온 창조성에 대한 내용과 이어지는 부작용이다. 무언가를 만들기는 점점 쉬워지고 그러한 창조물에 대한 보상은 점점 적어진다. 그 사이에 ‘스타 큐레이터’는 많은 이득을 얻지만 ‘크리에이터’는 그만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저작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불만에 연장선상에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서평 자체가 큐레이팅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를 보면 리뷰채널이 정말 많이 늘어난것을 느낄 수 있다. 이 것도 구글의 알고리즘일지 모르지만 선택을 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건 있다. 특히 넷플릭스 뭘 볼까 하는 것들?
어떤 채널의 경우 5분짜리 콘텐츠를 5분에 걸쳐 리뷰하는 경우가 있던데 이런경우는 어떻게 봐야할까? 예를 들면 <대사>의 내용을 이런식으로 말했다. 정도로 줄인걸로 리뷰가 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그런것만 추천으로 뜨는 건가 고민이 된다.
책들도 요약책서비스가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일부로라도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에 중요한 것을 넣으려고 하는 삐뚤어진 심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