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FEATURE
개괄 : 역사의 틈 사이에서 변화하는 애완 동물과의 관계
우리의 털 달린 친구들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우리는 애완 동물을 평생 반려자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냥 파트너에서 신적 존재까지 털 달린 친구와의 관계는 수세기에 걸쳐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동물과의 역사적 관계맺기의 대부분은 친절함보다는 잔인함을 기반으로하고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무료로 하숙하는 7800만 마리의 개와 8580만 고양이를 고려한다면 누가 주인인지 질문 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인간 사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를 조사할 것입니다.
네 다리가 달린 친구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또한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개는 최초로 사람의 의해 길들여진 동물이라고 여겨집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애완 동물’이 아니라, 이 길들여진 늑대는 사냥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껴안기보다는요.
가축화가 언제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추정범위는 매우 넓지만, 적어도 개가 자신의 소유주와 함께 매장되었을 때가 적어도 1 만 5 천년 전부터라는 견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Nereid 기념비 (기원전 390 년) 가 보여주듯이 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부유 한 귀족이 발쪽에 있는사냥개와 함께 연회장에 앉아 있습니다.
겸손한 고양이
고양이의 가축화는 약 1 만 2 천년 전의 최초의 농업 사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들은 사냥에 유용했지만,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하고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때의 고양이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곡물이 생겨서 생쥐가 생기자 고양이는 끊임없는 음식을 공급받고, 인간은 전염병을 방지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상호유익의 관계가 생겨났습니다.
이 실용적인 파트너십은 곧 많은 문화권에서 숭배로 발전했으며, 이집트인들은 특히 고양이 친구들울 좋아했다는 건 유명합니다.
벤 하산에서 발견 된 고양이 묘지에는 30만 개의 고양이 미라가 들어 있는데,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Bastet)의 숭배는 고양이를 살해하는 것이 죽음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도쿄의 하라주쿠에 오신것을 환영하는 헬로키티가 보여주듯이, 일본만큼 고양이가 많이 보이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오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불교(6 세기 경)와 동시에 중국에서 일본에 도착했으며, 이는 종교적으로 취약한 경전을 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관계(경전과 이를 지키는 고양이)는 일본인 귀족의 18세기 그림처럼, 고양이가 성스러운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상징적인 개체
상징적인 동물로 우리의 애완 동물들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 삶에서도 그 의미가 깊어졌습니다. 중세까지, 동물들은 풍부한 상징적 역할을 맡았고 예술가들은 그것을 통해 시청자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어린 양, 비둘기, 나귀와 같은 동물들은 희생과 평화와 겸손을 나타내는 데, 이는 대부분이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를두고 있습니다.
한스 홀 바인(Hans Holbein)이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애완 동물은 종종 전령의 상징이었습니다.
1520년대 후반에 그가 튜더 왕조를 처음에 방문했을때 그린것으로 여겨지는 그림에서 다람쥐와 찌르레기는 그녀의 이름을 암시합니다.
토지를 많이 가진 부인 앤 러벨(Anne Lovell)은 가문상징으로 다람쥐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찌르레기로 상징되는 이스트 할링 (East Harling)의 집을 소유했습니다.
환상적인 짐승
베스티아리(동물우화집)와 운더카머(독일어로 놀라움의 방)은 교회와 미술관 실험실사이에 존재하는 초기근대 유럽의 원시적인 박물관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연구는 유니콘과 같은 신화속 동물들과 열대조개,낙원의 새등 이국적인 동물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런 공간들은 인간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주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공인 알버트와 이사벨라의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그림은 상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제왕의 빛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이국적인 원숭이가 군주의 발에 매여 있으며 애완견들은 주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애완동물과 성정
키우는 개가 주인의 성정을 닮아 나타내는건 흔한 일입니다.
거만한 노인이 불독을 좋아한다던가 깔끔한 대도시인이 치와와로 대표되기도 하는 것 말이죠.
이러한 클리셰들은 실제로 연구에서도 증명됩니다. 오랜기간동안 사람들은 자신과 신체적 특징과 닮은 동물을 선택했다는 것을요. 그런면에서 애완동물은 신체적 특징 뿐만이 아닌 주인의 성정을 나타냅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도 이러한 연결고리를 잃지 않았습니다.그는 종종 자신의 애완견인 트럼프(퍼그)를 자신의 전투적인 성향을 나타내는데 사용했습니다.
1763년에 만든 조각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글에 소변을 보는 트럼프(퍼그)를 묘사한다던가, 잘 알려진 1745년의 자화상에서 트럼프(퍼그)의 우스꽝스러운 시선을 하는 등 트럼프(퍼그는) 초상화만큼이나 화가의 기질을 잘 보여줍니다.
영혼의 자리
계몽주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동물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고, 영혼이 없으므로 동물이 오토마톤(자동 인형,요즘의 아이보)으로 작동한다고 말한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수세기 동안 서양의 과학, 철학 및 사회를 밑받침하여, 생동성시험 및 동물 실험의 발전을 정당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데카르트 철학(동물은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이다.)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는 아마도 자신의 애완동물을 작풍에 등장시킨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일 겁니다. 그녀는 전체작품중 삼분의 일이 거미 원숭이, 사슴, 새, 멕시칸 헤어리스도그 같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있는 자화상으로 채워져있습니다.
이런 애완 동물은 확실히 프리다 칼로의 삶에서 큰 상징적 중요성을 지녔지만, 그들을 표현한 건 단순한 상징 이상이었습니다.
1945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동물들은 예술가의 것만큼이나 관객을 끌어들이는 사람 같은 눈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에는 하나보다 많은 영혼을 가진 존재가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본은 인간과 원숭이 개 그리고 중세아메리카 조각을 하나의 존재로 엮어냈습니다.
아름다움과 동물
20세기에는 동물에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세기는 동물을 착취해서 이익을 얻는 시기였습니다.
묶여 학대 당하는 동물을 코끼리 “점보” 같은 유명인(유명동물?)로 만드는 Barnum’s Circus같은 엔터테인먼트 제국의 등장이 대표적 예로 들수 있겠습니다. 유명한 동물들에 대한 학대와 짧은 삶은 널리 알려졌고,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 이런식으로 동물을 이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대중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955년 리처드 애버던 (Richard Avedon)이 찍은 사진인 “도비마와 코끼리들 (Dovima with Elephants)은 표면적으로는 조각상같은 모델과 부드러운 잠옷등의 보기좋은 미적요소를 조합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실크 가운을 입은 도비마(Dovima)의 고전적 미는 거칠고 주름진 코끼리로 인해 상쇄되고 묶인 사슬은 그들이 저항하는걸 보여줍니다. 이러한 아름다움과 노화라는 대립 – 또는 잔인한 미적 비용 – 은 애버던의 경력 두루에서 발견됩니다.
이글은 Pawtraits: Our Changing Relationship With Pets Throughout History 를 번역한 글입니다.
앜 번역량 많아…. 이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최근 구글에서 아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그림을 고화질로 감상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분류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구글 아트로 직접 링크가 애매해서 다른데서 가져온 그림들이지만 원래 글에서는 바로 구글 아트에 올려진 고화질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그림들을 검색하면서 같은 그림이어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그림끼리의 색감이 다르다는걸 느꼈습니다. 어떤건 약간 누렇고 파랗고 빨갛고 등등등 그런면에서 구글 아트 프로젝트는 정말 좋은 선택입니다. 단지 우리나라판은 아직 부족한점이 있어서 발전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