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Flèche Wallonne (프랑스어로 “왈롱의 화살”)는 매년 4월 벨기에, 왈로니아지역에서 열리는 주요 남자 프로 사이클링 로드레이스 대회입니다.
Belgian Ardennes classics중 하나인 La Flèche Wallonne는 일반적으로 Amstel Gold Race 와 Liège–Bastogne–Liège대회 사이에 개최됩니다. 한때에는 La Flèche Wallonne 과 Liège–Bastogne–Liège가 “Le Weekend Ardennais” 라는 이름으로 연달아 열렸습니다. (두 경주 모두 Amaury Sport Organisation에서 주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게 가능했습니다.). 단 7명의 선수만이 이 두 경기에서 동시에 우승을 하여 “Ardennes double” 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알레한드로 발베르데(Alejandro Valverde)가 2006, 2015, 2017 세번을 달성했고, 페르디난드 쿠블러(Ferdi Kubler) 가 1951년과 1952년 두번, Stan Ockers (1955), Eddy Merckx (1972), Moreno Argentin (1991) Davide Rebellin (2004), Philippe Gilbert (2011)등이 각각 한번씩 이러한 영광을 누렸습니다.
La Flèche Wallonne 대회는 1930년대의 신문인 Les Sports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1936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Classic Monuments만큼은 아닐지라도 Classic 경기중 하나로 인정되며, UCI Road World Cup과 UCI ProTour에도 등장합니다. 2009년부터는 이 경기에서 얻은 포인트가 UCI에는 산출하는 랭킹에 포함되었습니다.
많은 자전거 경기들이 그렇듯이 대회코스와 주행거리가 수년 동안 상당히 변화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에노.투르네(Tournai)에서 리에주(Liège)주까지의 도로에서 처음으로 진행되었는데 (경기가 열릴때마다 늘어나서 236km에서 300km가 되었습니다.
1938년에 가장 긴 거리를 찍었습니다.) 이후 에노.몽스(Mons)가 출발점이되었습니다. 1948년부터는 에노.샤를루아(Charleroi)에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부터는 반대로 리에주(Liège)주에서 시작하여 에노.샤를루아(Charleroi)로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시작지점과 피니시지점이 같았습니다. 리에주.베르비에(Verviers)에서 열린 1974–1978과 리에주.위이(Huy)에서 열린 1983–1985 사이의 코스는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1986 년부터는 리에주.스파(spa)에서 시작하여 리에주.위이(Huy)를 결승지점으로 했습니다. 1990년 이후 경주 거리는 210km을 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199.5km를 달리는 왈롱의 화살 대회는 에노.샤를루아(Charleroi)에서 시작되어 동쪽에 있는 리에주.위이(Huy)까지를 코스로 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샤를루아에서 위이까지 가는 도중 Mur De Huy (Huy의 벽)이라 불리는 가파른 업힐 구간을 세번 오릅니다. 몇몇 구간의 경사는 15% 이지만 최대 경사는 26%까지 존재합니다. 결승지점은 세 번째 업힐 후에 존재하는 위이의 벽(Mur De Huy)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레한드로 발베르데(Alejandro Valverde)가 다섯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네명의 라이더가 세번 우승했고 두명은 벨기에인 또 다른 두명은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사실 경기 자체가 벨기에에서 열렸기 때문에 대회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대회 우승자는 벨기에인이었습니다. 2011년까지 벨기에인의 우승횟수는 38번입니다. 여태껏 열렸던 경기에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우승 횟수입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인은 18번 우승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얻는 다는 소리에 혹해서 구글 애드센스를 신청해봤으나 승인되고 자동으로 추가되는 광고의 양에 깜짝 놀래버렸다. 가끔 어떤 블로그에 가보면 글 하나에 광고가 4~5개가 붙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사이트 구성 요소로 배너광고등등이 붙어있는걸 볼 수 있는데 이건 다 구글이 잘못한 거다.
특히 문단 중간에 끼어드는 광고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잡지를 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드는데, 잡지 중 번들번들한 잡지는 광고가 30%가량을 차지하고 내용들도 상품의 리뷰등으로 채워진게 많다. 유튜브에서도 콘텐츠의 양에 비해서 광고가 많은 경우를 자주 보는데 아마도 그런걸 만든 사람이 애드센스를 자동 광고 게재로 설정 해 놓았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이런 광고가 자동으로 글 사이에 끼어 넣어진다. 누르면 히오스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광고에서 대출 광고,비트코인 광고,무료로 해줍니다 등등 딱봐도 이건 관리가 안되는 사이트라는 느낌의 광고는 설정을 통해 막아줄 수 있다. 특히 대출광고,카지노,다단계등은 필수적으로 막아주는게 좋다. 흡연 관련도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광고는 애완동물 사료 광고 정도? 하지만 귀여운 동물이 나온다 해도 광고는 광고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이 아니고 글을 읽는 입장에서 광고와 글이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블로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본인 블로그에도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된다.
열심히 써놓은 글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구글 트렌드에 애드센스로 검색해보니 애드센스 승인기준, 수익, 유튜브 애드센스 등등이 나오는데 이 글도 검색으로 들어오려나 궁금하다. 수익을 얻는 목적으로 하는 건 좋은데 적어도 읽는 사람을 고려해서 광고를 붙였으면 좋겠다.
쿠퍼 테스트는 ‘유산소운동’의 저자인 케네스 쿠퍼가 1968년 미군을 위해 만든 신체능력 측정방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12분동안 얼마나 멀리 뛰어갈 수 있는지를 측정하지만, 거리를 고정시키고 몇분안에 들어왔는지를 측정 해 환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군대에서 시행하는 3km달리기를 평가하는 기준도 이 방법을 응용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3km를 25살 이하는 12분 30초, 25~30살은 12분 45초를 기준으로 특급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는 남,여의 쿠퍼테스트(12분동안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지) 평가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특급이면 very good이네요.
여군의 경우는 15분 30초 정도를 기준으로 특급이 주어지고, 12분 기준으로 2320m 입니다. 다만 3km를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평가의 여유를 줄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거리를 재는 것보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일정거리를 뛰게 한 후 시간을 통해 신체능력을 확인합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쿠퍼테스트를 할 때는 스포츠 트래커 앱(구글핏,앤도몬도,스트라바 등)을 이용해 편하게 본인의 신체능력을 체크 해 볼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만 없다면야
엔도몬도는 기본기능으로 지원한다고 하니 공기가 좋아지면 한번 뛰어보는건 어때요?
파리루베에서 30km 지점에서 팀 카로부터 받은 4mm 렌치로 스템을 조이는 피터 사간의 모습입니다.
보통 스템이 헐겁다고 느껴지면 바퀴의 방향과 핸들 바의 방향이 제대로 맞지 않게 되기 때문에 조정이 필수적이지만 저렇게 타면서 조이는 건 처음 본 것 같습니다. 보통은 내려서 다른 자전거로 갈아타거나 하는데 말입니다.
카본 자전거가 대세가 되면서 자전거 파손의 위험때문에 스템을 너무 꽉 잠구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팀의 미캐닉은 사간을 많이 믿는 듯 합니다. 벨로뉴스의 에디터중 한명인 Lennard Zinn씨는 경기중에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경기자가 자전거를 부셔버릴수도 있는데 토크렌치가 아니고 일반 육각렌치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부담을 안고도 적절히 스템을 조이는 사간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 댓글에는 “토크렌치를 쓰지 않았다고? 워런티는 물건너갔네”라는 식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전거를 타면서 고친 사간은 Peter Sagan outsprinted Silvan Dillier in the Roubaix Velodrome to win Paris-Roubaix for the first time (Pic: Sirotti)
파리루베에서 우승합니다.
7월 7일부터 뚜르드프랑스가 열립니다. 관련 뉴스 나오면 꾸준히 번역할 거니까 많이 찾아주세요!
Good Friends John Henry Dolph Walters Museum cats and kittens in art
우리의 털 달린 친구들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우리는 애완 동물을 평생 반려자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냥 파트너에서 신적 존재까지 털 달린 친구와의 관계는 수세기에 걸쳐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동물과의 역사적 관계맺기의 대부분은 친절함보다는 잔인함을 기반으로하고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무료로 하숙하는 7800만 마리의 개와 8580만 고양이를 고려한다면 누가 주인인지 질문 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인간 사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를 조사할 것입니다.
네 다리가 달린 친구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또한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개는 최초로 사람의 의해 길들여진 동물이라고 여겨집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애완 동물’이 아니라, 이 길들여진 늑대는 사냥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껴안기보다는요.
가축화가 언제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추정범위는 매우 넓지만, 적어도 개가 자신의 소유주와 함께 매장되었을 때가 적어도 1 만 5 천년 전부터라는 견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Nereid 기념비 (기원전 390 년) 가 보여주듯이 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부유 한 귀족이 발쪽에 있는사냥개와 함께 연회장에 앉아 있습니다.
겸손한 고양이
고양이의 가축화는 약 1 만 2 천년 전의 최초의 농업 사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들은 사냥에 유용했지만,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하고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때의 고양이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곡물이 생겨서 생쥐가 생기자 고양이는 끊임없는 음식을 공급받고, 인간은 전염병을 방지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상호유익의 관계가 생겨났습니다.
이 실용적인 파트너십은 곧 많은 문화권에서 숭배로 발전했으며, 이집트인들은 특히 고양이 친구들울 좋아했다는 건 유명합니다.
벤 하산에서 발견 된 고양이 묘지에는 30만 개의 고양이 미라가 들어 있는데,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Bastet)의 숭배는 고양이를 살해하는 것이 죽음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도쿄의 하라주쿠에 오신것을 환영하는 헬로키티가 보여주듯이, 일본만큼 고양이가 많이 보이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오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불교(6 세기 경)와 동시에 중국에서 일본에 도착했으며, 이는 종교적으로 취약한 경전을 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관계(경전과 이를 지키는 고양이)는 일본인 귀족의 18세기 그림처럼, 고양이가 성스러운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상징적인 개체
상징적인 동물로 우리의 애완 동물들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 삶에서도 그 의미가 깊어졌습니다. 중세까지, 동물들은 풍부한 상징적 역할을 맡았고 예술가들은 그것을 통해 시청자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어린 양, 비둘기, 나귀와 같은 동물들은 희생과 평화와 겸손을 나타내는 데, 이는 대부분이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를두고 있습니다.
한스 홀 바인(Hans Holbein)이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애완 동물은 종종 전령의 상징이었습니다.
1520년대 후반에 그가 튜더 왕조를 처음에 방문했을때 그린것으로 여겨지는 그림에서 다람쥐와 찌르레기는 그녀의 이름을 암시합니다.
토지를 많이 가진 부인 앤 러벨(Anne Lovell)은 가문상징으로 다람쥐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찌르레기로 상징되는 이스트 할링 (East Harling)의 집을 소유했습니다.
환상적인 짐승
베스티아리(동물우화집)와 운더카머(독일어로 놀라움의 방)은 교회와 미술관 실험실사이에 존재하는 초기근대 유럽의 원시적인 박물관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연구는 유니콘과 같은 신화속 동물들과 열대조개,낙원의 새등 이국적인 동물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런 공간들은 인간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주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공인 알버트와 이사벨라의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그림은 상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제왕의 빛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이국적인 원숭이가 군주의 발에 매여 있으며 애완견들은 주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애완동물과 성정
키우는 개가 주인의 성정을 닮아 나타내는건 흔한 일입니다.
거만한 노인이 불독을 좋아한다던가 깔끔한 대도시인이 치와와로 대표되기도 하는 것 말이죠.
이러한 클리셰들은 실제로 연구에서도 증명됩니다. 오랜기간동안 사람들은 자신과 신체적 특징과 닮은 동물을 선택했다는 것을요. 그런면에서 애완동물은 신체적 특징 뿐만이 아닌 주인의 성정을 나타냅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도 이러한 연결고리를 잃지 않았습니다.그는 종종 자신의 애완견인 트럼프(퍼그)를 자신의 전투적인 성향을 나타내는데 사용했습니다.
1763년에 만든 조각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글에 소변을 보는 트럼프(퍼그)를 묘사한다던가, 잘 알려진 1745년의 자화상에서 트럼프(퍼그)의 우스꽝스러운 시선을 하는 등 트럼프(퍼그는) 초상화만큼이나 화가의 기질을 잘 보여줍니다.
영혼의 자리
계몽주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동물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고, 영혼이 없으므로 동물이 오토마톤(자동 인형,요즘의 아이보)으로 작동한다고 말한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수세기 동안 서양의 과학, 철학 및 사회를 밑받침하여, 생동성시험 및 동물 실험의 발전을 정당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데카르트 철학(동물은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이다.)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는 아마도 자신의 애완동물을 작풍에 등장시킨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일 겁니다. 그녀는 전체작품중 삼분의 일이 거미 원숭이, 사슴, 새, 멕시칸 헤어리스도그 같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있는 자화상으로 채워져있습니다. 이런 애완 동물은 확실히 프리다 칼로의 삶에서 큰 상징적 중요성을 지녔지만, 그들을 표현한 건 단순한 상징 이상이었습니다.
1945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동물들은 예술가의 것만큼이나 관객을 끌어들이는 사람 같은 눈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에는 하나보다 많은 영혼을 가진 존재가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본은 인간과 원숭이 개 그리고 중세아메리카 조각을 하나의 존재로 엮어냈습니다.
아름다움과 동물
20세기에는 동물에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세기는 동물을 착취해서 이익을 얻는 시기였습니다.
묶여 학대 당하는 동물을 코끼리 “점보” 같은 유명인(유명동물?)로 만드는 Barnum’s Circus같은 엔터테인먼트 제국의 등장이 대표적 예로 들수 있겠습니다. 유명한 동물들에 대한 학대와 짧은 삶은 널리 알려졌고,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 이런식으로 동물을 이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대중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955년 리처드 애버던 (Richard Avedon)이 찍은 사진인 “도비마와 코끼리들 (Dovima with Elephants)은 표면적으로는 조각상같은 모델과 부드러운 잠옷등의 보기좋은 미적요소를 조합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실크 가운을 입은 도비마(Dovima)의 고전적 미는 거칠고 주름진 코끼리로 인해 상쇄되고 묶인 사슬은 그들이 저항하는걸 보여줍니다. 이러한 아름다움과 노화라는 대립 – 또는 잔인한 미적 비용 – 은 애버던의 경력 두루에서 발견됩니다.
최근 구글에서 아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그림을 고화질로 감상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분류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구글 아트로 직접 링크가 애매해서 다른데서 가져온 그림들이지만 원래 글에서는 바로 구글 아트에 올려진 고화질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그림들을 검색하면서 같은 그림이어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그림끼리의 색감이 다르다는걸 느꼈습니다. 어떤건 약간 누렇고 파랗고 빨갛고 등등등 그런면에서 구글 아트 프로젝트는 정말 좋은 선택입니다. 단지 우리나라판은 아직 부족한점이 있어서 발전이 기대됩니다.
저번 글에 이어서 생고생의 시작(2)
워드프레스 스킨을 건드릴려면 https로 리다이렉트 되는걸 풀고 다시 http 주소로 가서 스킨을 바꾸고 다시 와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 한번 날려먹은 다음부터는 조심스러워서 건드리기 무섭다.
https로 주소를 바꾼 이후 좋은점은 전에는 통계에서 다이렉트 접속으로 잡혔던 유입이 이제는 리퍼럴로 바뀐 것이다. http://analyticsmarketing.co.kr/digital-analytics/google-analytics/1401/
위 사이트에서 봤는데 http에서는 https웹사이트를 타고 들어오는건 직접유입으로 잡힌다고 한다. 새로 오는 사람은 있는데 어딜 통해서 들어오는지 몰랐기 때문에 자전거에 대한 글을 보러 오는건지 아니면 번역글을 보러 오는 건지 몰랐는데 요새는 대부분이 따릉이를 통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그 분류보다는 카테고리 분류가 더 마음에 들고 카테고리내 같은 글 보기 메뉴도 다시 만들어야 되는데 생각보다 힘들다. 그리고 트래픽 제한이 있는 걸 고려하면 사진 같은건 외부링크를 통해서 올려야겠다.
가끔은 내가 왜 워드프레스를 잡고 이러고 있는건지 의문이 든다.
뭐 그래도 보람은 있으니까!
안전한 웹페이지를 만들라는 웹표준을 준수하여 http://로 시작되던 블로그를 https://로 이전했습니다.
생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cloudflare 네임서버에서 인증서를 주길래 자동으로 처리해주려나 해서 바로 리다이렉트 시켰더니 블로그 내의 이미지가 다 깨져버렸습니다. 이유가 뭔가 했더니 워드프레스 내부 폴더로 이미지를 올린건 http여서 https로는 불러올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터 베이스로 가서 replace를 이용해서 http로 시작되는 주소를 https로 전부 바꾸니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일부 글에서는 안전함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메인페이지로 나오니 여전히 “안전하지않음” 이 뜨길래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https 이전을 해주는 플러그인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방화벽에 걸려서 제 블로그에 제가 못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펑하고 터트리고 다시 새로운 블로그를 짓고 네임서버에 도메인 설정하고 저번에 쓴 글 가져오고등등 난리를 부렸습니다. 글을 옮긴 이후에도 계속해서 안전하지 않음이 뜨길래 글 하나하나의 소스를 보면서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문제점은 외부링크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부 글에서 사진을 퍼 왔을경우에 https를 지원하는 사이트의 사진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http만 지원하고 https를 지원하지 않는 주소라면 오류를 내뿜게 됩니다. 그래서 개인계정에 사진을 올리고 다시 테스트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보시다시피 안전한 블로그가 되었습니다.
원래 생각으로는 간단하게 https 로 시작되는 안전한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서 잠깐 건드렸던 건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는김에 서버내의 프로그램도 업데이트하고 암호도 걸었습니다. 새삼 네트워크 전문가에 전문가가 괜히 붙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안전해진 스뮤바(냉동펭귄)블로그에 많이 찾아주세요.
제가 전에 썻던 글에서 말했듯이 어떤것들은(정정: 어떤것이든) 내게 영감을 줄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읽으면서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건 “언제부터 게이머들은 유약해졌을까?” 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뿐이구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이의를 가진 저를 발견했습니다. 전 이미 전에 쓴 데몬즈소울/다크소울에 관한 기사에서 이에 관해서 논한적이 있습니다.하지만 이 기사는 제게 오래된 게임들과 예로 들만한 게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도대체 Open Ended게임에 뭔일이 일어난거야?
지금 아마도 당신은 새로운 게이머고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Open Ended가 뭔데? 전 이제부터 Open Ended게임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몇개 들면서 그게 아직도 당신 주변에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죠. 앞부분에 써있듯이 전 그것들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8개의 엔딩이 있는 역사상 가장 정교한 멀티엔딩 시스템을 가진 게임. God bless Enix.
만약 당신이 너무 어리다면 아마도 open ended게임이 뭔지 모를 겁니다. <갤러그같은건가?>아뇨.제길, 전 지금 온라인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건 open ended이긴 하지만 사실 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신경끄시고!.제가 이야기할 건 게임안에서 당신의 행동에 따라서 바뀌는 엔딩이 여러개 있는 것들입니다.
제가 본 가장 최근의 게임은 베데스다의 폴아웃과 엘더스크롤 시리즈군요.<이 글은 2011년에 작성되었습니다.> 클래식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죠. 솔직히 말하면, 잘못된것이 아니라면 왜 바꾸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게임 내내 당신의 행동에 따라 결말이 바뀔 수있는 Open Endedness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끔 당신이 처음에 도왔던 소녀가 거친 여전사가 되어서 당신이 구하려고 찾아헤메다 방금 찾은 왕국을 정복하고 많은 남자들을 학살한다던가… 다른 open ended게임에서는 게임 중에 어떤 캐릭터가 살았는지 / 죽었는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질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인물들은 결말에 대한 최종 계산에 들어간 모든 행동을 환영합니다. 가끔 그런 엔딩들은 A부터 F까지 랭크가 주어집니다.(F를 받았을경우 당신은 개같이 플레이했지만 게임을 깨긴 했다는 겁니다. 어찌되었던간에)
구글에 검색해본후,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open ended게임을 샌드박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 알아내었습니다. 그러나 미묘하게 다릅니다.open ended는 멀티엔딩이 있는 게임을 뜻하고 오픈월드는 샌드박스게임을 의미합니다.
지금부터 혼란을 피하기 위해 멀티엔딩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가장 쉽고 마음에 와닫는 예는 파이널 판타지6과 크로노트리거 입니다.두 게임 모두 당신이 어떻게 진행하는지,누굴 도왔고 메인캐릭터중 누구를 고용했는지에 따라 당신의 엔딩은 미뤄지고 그 사이 일어나는 이벤트들은 “전설적 전투의 후기담”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시작했을까요? 파이널판타지? 드래곤퀘스트? 울티마?! 아뇨,아닙니다 또 아니에요. 그 답은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맞습니다. 버블버블은 아마도 여러 개의 엔딩이있는 첫 번째 게임입니다.
누가 80년대 말에 만들어진 동네 오락실 게임에 멀티엔딩이 있을지 생각이나 할까요? 그게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는 그 전에도 뭔가가 있다는 것을 찾아내었습니다. 이 게임은 파트너와 같이 하거나 보너스 스테이지를 하든 어느 쪽이든 특별한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나쁘지 않죠.
또한 메트로이드는 당신이 게임을 충분히 빨리 깻다면 사무스의 헬멧을 벗은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물론 8bit로요. 그 느낌은 말로 하기 힘듭니다. 이런 식의 생각들은 80년대 후반부터 뿌리내렸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내었건 아니던간에 더 많은 엔딩을 제공하기로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게이머의 의견에 달려 있었습니다. 반대는 없었습니다.
요즘 시대의 대표적인 멀티엔딩게임들은 우리의 콘솔<플레이스테이션과 Xbox등>에서 볼수 있습니다. 헤비레인이라는 게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 하면서 당신이 얼마나 잘 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스토리상 살아날을지에 따라 바뀌는 멀티엔딩을 기반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또한 슬프게도 다른 이야기도 들으셨을 텐데 모션 컨트롤이 추가된다거나 QTE로 진행된다거나 하는것들이요.
둘 다 훌륭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게임보다는 어드벤처 북에 가깝습니다. 이런 멀티엔딩은 단순히 값과 리플레이를 추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헤비레인은 18개의 별개의 엔딩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건 그 엔딩에 도달하게 하는 거죠. 놀라운 스토리와 컨셉입니다. 그 게임을 만든 사람들에게 명성이 있기를.
페이블은 선과 악 양쪽의 비주얼을 만들었고 엔딩은 당신의 행동과 일치합니다.
헤비레인같은 게임에 친숙하다면 당신에게는 영적 지도자가 말하는 인디언 예언이나 섭씨나 온도기준이 비슷한 겁니다. 아직 저의 머리 꼭대기는 몇몇 게임이 남아 있습니다.하우스오브더데드 시리즈는 당신의 성과에 따라서 더 좋은 엔딩을 제공합니다. 이와같이 많은 게임들이 단순히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해 어떤 한 선택을 골라서 엔딩을 보는 것을 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디자인에 게으른 타입에는 Force Unleashed, Grand Theft Auto IV and Half-Life등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만 적은 거긴 합니다. 다른 타입에는 선과 악의 선택지가 있는 페이블(가장 큰 예시라고 확신합니다.), Star Wars: Knights of the Old Republic and Balder’s Gate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open-ended 게임은 어디에 있을까요? 놀라운건 그것들이 단순히 진화해서 멀티엔딩을 가지고 있다고 광고되는데 그치지 않고, 일종의 게임의 기준이 되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헤일로도 당신이 잘한다면 추가적인 상황이 주어집니다. 앞으로의 게임들은 위에서 말했던 스타오션처럼 88가지 엔딩을 가지고 있고 당신의 업보와 당신의 파티멤버까지 적용되는 관계 시스템을 가지는 복잡한 게임이 될까요?
아마도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힘들게 즐길터고 게임을 잘하지 못하면 영영 완벽한 엔딩을 보는건 물건너 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그냥 그 형태대로 복귀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요. 저는 사실 체력이 없어 적들이 정지된 이미지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움직이는상황을 즐겼습니다.
당신이 40시간을 오직 한 게임에 엔딩한컷을 보기위해 게임에 갈아넣었다면<항아리겜:??????> 저는 그런 엔딩은 싸구려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연성있는 상황들은 결말을 훨씬 더 보람있게 만듭니다.
오늘은 이만 끝내죠.
가벼운 마음으로 저의 과거 블로그 포스트를 둘러보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